내가 어떤 타잎의 창업자인지 알자

창업자는 내실있는 단계적 성장형과 빠른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저돌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가 어떤 기질의 창업자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어떤 타잎의 창업자인지 알자


스타트업 창업자는 망망대해에서 GPS나 지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배의 선장과 같다.  내가 가려는 땅이 있기는 있는건지, 거기에 가면 모두가 풍족해질 보물이 있을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풍랑을 헤치고 항해하는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다.

출항하려는 순간 배에 난 구멍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선장인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어떤 선장은 '구멍난 배로 망망대해에 나갔다가 침몰될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를 수리하고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다른 선장은 '구멍이 있어도 절라 빨리 달리면 물 안 새. 그깟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뒤쳐질 수 없어. 배 당장 띄워!' 라고 할 것이다. 누구도 나를 멈출 수 없다는 저돌형이다.

배에 난 구멍부터 때우고 출발하는 사람은 '내실있는 단계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창업자이다. 일단 출발하고 나서 구멍을 떼울 방법을 찾는 선장은  '빠른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타잎이다. 이 두 타잎은 평행우주와 같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서로를 우습게 보기도 한다. 내실있는 단계적 성장형은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창업자를 사기꾼같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뻥만 치는데 운좋게 안 망하네'처럼 말이다.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형은 내실있는 성장형에 대해 '무능해서 빨리 크지 못하는 걸 내실로 포장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내실있는 단계적 성장형의 인간으로 태어났고 오래전에는 그게 맞는 방법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투자한 여러 스타트업의 성장이나 실패 경로를 옆에서 관찰하고 나 스스로 창업을 하면서 이 두 성향은 타고난 기질일 뿐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며 어떤 기질로도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버의 초기 이야기를 읽어보면 경찰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트래비스 캘러닉을 협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너네 차 한대씩 잡힐때마다 너(캘러닉) 감옥생활 1개월씩 늘어나니 알아서 해' 식으로 말이다. 나같은 내실있는 성장형 창업자라면 '불법으로 판단되는데 계속 끌고 나갈 수는 없어. 법률 문제부터 해결하고 서비스를 키워야 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 우버가 존재했을까? 캘러닉은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고 구멍난 배를 전속력으로 몰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버에는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방식이 맞았던 것 같다.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성향의 창업자가 실패한 스토리도 많다. 구멍이 아니라 배에 엔진이 없는데 달리려 한 극단적인 사례인 Theranos 외에도 엄청난 Hype를 만들어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다가 고꾸라진 회사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많이 있으며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진 회사 이야기가 천천히 가다가 irrelevant해진 회사 스토리보다 선정적이므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가 투자한 회사 대표들도 이 두 타잎 중 하나에 해당하는데, 나는 타고난 기질에 따라 다르게 조언하는 편이다.

내실있는 성장형 창업자는 큰 떡수를 두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뒤쳐지다가 경쟁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다. 내 회사는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10배 많은 자금을 유치해 공격적으로 성장하는 경쟁자가 나타나면 내실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VC 포함 세상 사람들 눈에는 정신승리(영어로는 Moral Victory라고 한다.)처럼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나는 내실 위주의 포트폴리오 창업자에게는 회사를 망하게 할 정도가 아니면 문제를 안고 달리는 것도 방법임을 내가 관찰 또는 경험한 사례를 들어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더 좋은 방법은 공동창업자나 경영진에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저돌형이 포함된 경우이다. 경영진 간 상호 텐션은 있겠지만 균형잡힌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함께 한 히스토리가 있으면서 성향이 반대인 공동창업자를 찾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2016년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발표자료 중 하나. 스티브 잡스가 워즈니악이 아닌 빌게이츠와 공동창업했다면 어떨까? 또는 잡스 본인과 비슷한 떠벌이 알파(alpha)와 함께 창업했다면 어땠을까? 

빠른 성장으로 문제를 덮는 창업자는 잘 나갈 땐 광속으로 달리지만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 있다. 시장 커지는 게 생각보다 느려서 빨리 달리는 게 의미없는 상황이 오면 내실있는 성장형 창업자가 득세할수도 있다. 또는 문제를 성장이라는 진통제로 덮다가 더이상 못 버티게 될 수도 있다. 구멍난 배로 빨리 달리려면 모멘텀이 생명이다. 중간에 멈추는 순간 물이 새기 시작해서 다시는 전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어느 유형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와 같은 기질의 사람만 모으면 자기들끼리는 매번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것 같은데 결과는 틀리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매일 듣는 것은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달리는 속도와 방법에 이견이 있다고 비전마저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전은 공유하면서 나와 다른 시각으로 계속 자극을 주는 사람, 내 타고난 comfort zone을 벗어나도록 돕는 사람은 꼭 필요하다.

내 기질을 아는 것은 경쟁업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도 긴요하다. 십여년 전 창업했을 때 경쟁업체 중 펀딩을 우리보다 많이 받은 곳이 있었다. 그들의 서비스를 유심히 관찰하면 UI가 너무 구려서(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덕지덕지 붙인 식이었다.) 내실있는 성장형인 나는 '실력 없는 회사가 운이 좋아 펀딩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UI는 몇년 뒤에도 여전히 구렸지만 대표의 영업력이 탁월해 매출 면에서 우리가 넘볼 수 없을만큼 빨리 성장했다. 그 회사 창업자가 나보다 무능한 게 아니라 항해 방식이 달랐을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그가 이겼다. 이 경험은 내게 절절한 교훈을 남겼다. 배에 구멍이 없다고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어떤 타잎인가? 한번 생각해보시고 본인 회사에 있는 사람들도 분류해 보시라. 투자를 받으셨다면 담당 심사역과의 대화도 생각해 보시라. 여러분이 매일 갖는 대화가 건강한 논쟁 대신 서로의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가지는 않는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서 익어 죽는 개구리보단 메기를 풀어놓은 어항속 미꾸라지가 생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