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는 스타트업을 어떻게 도울까?

VC는 어떤 식으로 투자기업을 도울까? 모든 의사결정을 함께 내리는 것이 아닌 투자자의 경험으로 확실히 도울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투자자라고 생각한다.

VC는 스타트업을 어떻게 도울까?

많은 VC들이 '우리는 단순한 투자자금이 아니다. 투자하고 나서 회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라고 말한다. 스타트업도 투자 후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VC가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어떤 경우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좋은 투자자는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과 돕지 못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매일 일어나는 수십가지 상황에 대한 의사결정은 24시간 회사 일만 생각하는 경영진이 가끔 들여다보는 나보다 더 잘 내릴 것이다. 마이크로한 의사결정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어쩌다 방문한 시어머니가 냉장고가 어지럽다느니 부엌이 더럽다느니 하고 며느리에게 잔소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board member로 참여하는 기업의 이사회에서도 세세한 건 그냥 듣기만 하고 꼭 의논해야 할 사항, 내 input이 회사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항목에만 집중하려 한다.

둘째, VC는 패턴인식(pattern recognition) 비즈니스이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창업자보다 많고 매크로한 트렌드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미루지 않도록 창업자를 보완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창업자들은 Mixpanel이나 Amplitude같은 data analytics 도구가 돈도 아깝고 초기에는 노가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meaning: 필요할 때마다 query를 날려 DB에서 뽑아보거나 자체 admin page를 만들어서 보면 된다)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극초기부터 이런 도구를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이유는 1) Data 관련 툴을 의사결정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경영진 스스로가 visualized data를 가지고 노는 연습을 해야 하고, 2) 회사가 많이 성장해서 data양이 너무 커지면 뭘 들여다봐야할지 알기가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표님 말씀대로 2년전에 붙였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사용자 규모가 너무 커져서 도구는 좋은데 저희가 제대로 이용 못하는 것 같아요'같은 과거 투자 기업 사례에서 배운 교훈을 활용하는 것이다. 여러 패턴을 본 VC가 창업자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셋째, 투자자는 바둑의 훈수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회사 대표는 전쟁에 비유하면 매일의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병사이면서 동시에 전략을 짜는 장군이기도 하다. 하나는 바닥에서 박박 기는 일이고 하나는 높은 곳에서 판 전체를 봐야 하는 일이다. 인간의 뇌는 이렇게 완전히 다른 레벨의 일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functioning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으므로 어떤 시점에서 보든 한 쪽이 우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당장 처리할 일이 많으면 그 일에 매몰되기 때문에 한발짝 물러서서 전 판을 내려다보기 어렵다.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일단 상대방을 이겨야지 전략은 모르겠다가 되는 것이다. 나는 투자자의 역할 중 하나가 심각한 전투에 뛰고 있는 대표를 장군의 자리로 끌어내어 '이 전투를 이기는 게 우리가 전쟁을 이기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한다. 전투를 대신 해줄수는 없지만 승리 확률을 높이는 전투만 하도록 도울 수는 있다.

넷째, VC는 창업자보다 나쁜 상황의 경험이 더 많다. 따라서, 창업자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이 VC에겐 '비슷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지'가 된다. 1년간 공들인 제품을 버리고 새로운 사업으로 피벗(pivot)해야 하는 창업자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스로 바보처럼 생각되고, 그 제품을 믿고 투자한 VC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기존 제품이 잘 안되니까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여러 고민을 한다. 내가 투자한 초기 미국 기업의 25% 정도는 전혀 다른 사업으로 피벗했고 그러고 나서도 VC 펀딩을 받거나 Y-Combinator같은 유명 엑셀러레이터에 뽑힌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창업자와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고 피벗은 실패가 아님을 말해줄 수 있다. 바둑에서 훈수꾼에게 수가 더 잘 보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많은 투자 경험에서 세상 어떤 일도 '보이는 것만큼 좋지도,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실제 내가 창업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잘하는 부분이 있다. 내 경우 글로벌 진출, 미국 VC에게 펀딩받기 등등이다. 이런 부분은 구체적인 action item도 경영진과 의논하게 된다. Public knowledge가 없는 영역을 투자자가 도울 수 있다면 회사에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VC의 도움을 과대평가하지는 마시라. 흔히 하는 말로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다. 좋은 학교나 가정교사를 알아봐주는 부모, 급할 때 문제풀이를 도와줄 수 있는 부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