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밸레이더기고] 쿠팡이 스타트업 업계의 ‘박세리’인 이유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전례없이 큰 사건이었다. 앞으로 쿠팡의 뒤를 이어 다른 국내 유니콘(비상장이면서 기업가치 1조 이상을 인정받는 회사를 지칭)들이 미국 증시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실밸레이더기고] 쿠팡이 스타트업 업계의 ‘박세리’인 이유는?

2021.05.10

기사출처: https://bit.ly/3I0iiKU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 한국 스타트업에 미칠 3가지 영향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 가져올 변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전례없이 큰 사건이었다. 앞으로 쿠팡의 뒤를 이어 다른 국내 유니콘(비상장이면서 기업가치 1조 이상을 인정받는 회사를 지칭)들이 미국 증시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유니콘들의 내실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유니콘 외에도 잠재력이 큰 유망 스타트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미국 증시는 한국 스타트업에 더이상 넘사벽이 아닌 충분히 고려 가능한 무대로 변해갈 것이다. 이 이벤트를 변곡점으로 우리 스타트업 업계가 세계 수준으로 확장,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쿠팡 상장이 한국 스타트업에 미칠 영향은 3가지가 그 근거다.

첫째, 쿠팡의 상장은 많은 미국 투자기관에게 한국 국내 시장만으로도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있었지만, 주된 투자처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장 규모가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외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많은 국내 유니콘들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뒤 투자가 성사된 경우다. 하지만 쿠팡 상장은 한국 시장 규모에 대한 시각을 바꿨다.

앞으로 외국 투자기관의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금액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유니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벤처투자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벤처캐피탈과 외국 자본의 경쟁도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투자 경쟁은 한국 스타트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창업의 위험을 낮추며, 기존보다 더 과감한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둘째, 쿠팡 뉴욕증시 상장 이후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도 미국처럼 크고 작은 M&A가 빈번해질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은 매년 수십개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데 ‘Aqui-hire(Acquisition+Hire·인재인수)’라고 부르는 회사 인수와 인재 흡수가 동시에 이뤄지는 형태도 포함된다. 우수 인재 채용에 투입되는 비용이 워낙 높아, 아예 회사를 인수하며 우수 인재를 흡수하는 식이다.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막대한 돈이 인사팀이 우수 인재를 찾아 채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Aqui-hire를 당하는 측면에서도, 스타트업 창업자는 실패가 아닌 미래의 성공을 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대기업에 조인한다. 엑시트(출구)을 통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창업자의 회사 매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필자는 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0년간 미국 벤처캐피탈들은 IPO보다 M&A를 통해 더 많은 돈을 회수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인수된 후 계속 일하다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생기면 다시 나와서 창업한다. 이런 인재의 자유로운 흐름은 수십년간 실리콘밸리 생태계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양분으로 작용하고 업계 수준을 향상시켜왔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쿠팡같은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많은 인재들을 자기 우산 아래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며 이에 맞서기 위해 카카오, 네이버같은 기존 IT 대기업이나 비상장 유니콘들도 비슷한 행보를 취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 그랬듯 스타트업의 인수합병이 늘어나고 인재가 더 자유롭게 이동하게 될 것이다.

셋째,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도 아니면 모’의 위험한 게임으로 간주되지 않고 더 많은 인재가 스타트업 업계로 들어올 것이다. 창업은 본질적으로 실패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투자할 자금이 줄을 서있고 홈런을 못 쳐도 IT 대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위험은 현저히 낮아진다. 흔히 창업가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 한국 창업가보다 더 용감한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인프라가 창업을 극단적으로 위험한 선택이 아닌 충분히 고려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창업 실패 위험성을 회피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면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처럼 우수한 창업자의 파워가 더 커지고, 우수 인재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스타트업 업계를 더 키울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8년간 일한 필자는 지금이 한국 스타트업 업계, 나아가 국가 전체의 위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느낀다. 박세리 선수가 처음 LPGA 출전했을 때 온 국민이 TV를 시청하는 등 국가적인 이벤트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여자골프의 활약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스타트업 업계도 마찬가지다. 쿠팡이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고, 언젠가 우리는 한국 스타트업의 성공 소식에 둔감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만큼 한국 스타트업 앞에 놓인 미래가 밝다. 이런 시기에 투자든 창업이든,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