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인종차별 스캔들로 생각해 본 스타트업의 내실과 포장의 관계

NFL 인종차별 스캔들로 생각해 본 스타트업의 내실과 포장의 관계
마이애미 돌핀스 오너 Stephen Ross와 Brian Flores 감독. 2년전 채용 발표때의 사진이다. 

오늘 미국 스포츠 업계에 메가톤급 폭탄이 터졌다. 얼마전 해고된 NFL 마이애미 돌핀스 Brian Flores 前 감독이 NFL과 3개 구단을 대상으로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 때문에 흑인인 자신이 채용되지 않는다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주요 방송사들이 그를 초대했고 ESPN도 대표적 모닝쇼인 GetUp에서 단일 사안에 20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해 Brian Flores가 본인 스토리를 말할 수 있게 했다.

NFL뿐 아니라 미국 스포츠 업계 전반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선수의 70% 이상이 흑인이지만 흑인 감독은 극소수(NFL 32개 팀 중 흑인 감독은 피츠버그의 Mike Tomlin 하나뿐이다.)이고 흑인 감독은 백인 감독보다 쉽게 해고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코치(Coordinator)에서 감독이 되는 문은 흑인 코치에게 훨씬 좁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러 방송사에 나온 Flores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시청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코칭 커리어를 끝내버릴만큼 폭발력있는 소송을 했으니 그는 이 싸움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고 그러려면 여론이 지지해야 한다. NFL도 비즈니스이므로 고객들이 원하면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의 여러 인터뷰는 기선제압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의 답변은 대부분 단답형이고 설득력이 떨어졌다. Flores의 변호사도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자주 끼어들어 부연설명을 했다. 프로그램 진행하는 사람도 답답했을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채용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답하게 의사소통했다면 선수나 프론트오피스와의 협업 능력을 걱정할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데 방송이라 버벅거린 것이길 바란다.  

내실(Substance)이 포장보다 중요하지만 좋은 상품이라고 아무렇게나 포장해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다보면 어떤 창업자는 실제 내실이 100일때 VC를 잘 설득해 150의 가치를 인정받아 펀딩을 쉽게 한다. 기자를 만나도 사업을 매력적으로 설명해 공짜 PR을 받는다. 이런 창업자는 투자한 입장에서는 걱정이 덜하다. 반대로 100을 만들어놓고 50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창업자도 있다. 이런 회사는 대인관계에 서투른 자식의 직장생활을 염려하는 부모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펀딩할때마다 불안하다. 승패가 흑백으로 갈리는 스포츠나 바둑이 아닌 이상 개인이나 회사의 시장가치는 내실과 포장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서 산정된다. 실적이 '묻지 말고 투자' 수준이라면 포장이 조금 엉성해도 괜찮지만 펀딩이 필요한 스타트업의 대다수는 숫자만으로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업의 타당성과 실적의 의미를 귀에 쏙 들어오게 설명하고 투자자를 동의케 만들어야 펀딩 가능성이 높아진다.  

타고난 언변이 좋지 않은 사람은 어떡하냐고? VC가 바라는 것이 유려한 언변은 아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은 발음은 별로였지만 국제무대에서 영어로 본인 생각을 잘 표현했다. 의사소통은 생각의 전달이지 발음이나 문법같은 aesthetic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창업자도 회사의 경쟁력과 철학을 명쾌하게 설명하는것이 중요하지 설명이 길고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Beatles 음악의 코드 구성을 보라. 대부분의 노래가 쉬운 몇개의 코드로 되어있다. 가수 한대수 씨 말마따나 노래할 이야기가 있는게 중요하지 작곡 기술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절판된 그의 자서전 '물 좀 주소 목마르요'는 재밌는 책이었다.).

본인 사업을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것은 노력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게 안된다면 스스로도 설득이 안되는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굉장히 좋은 회사인데 VC나 시장에서 몰라줘'는 사실일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안된다. 차라리 'VC들은 뭣도 모르는 문외한이니 늙은 내 부모님도 설득될만큼 쉬운 스토리를 만들겠다'는 결심이 낫다. 명쾌한 메시지와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펀딩 뿐 아니라 조직 문화와 직원 사기에도 필수적이다.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는 직원이 죽어라 일할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내 가치는 나 스스로 매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인식에 따라 정해지는 값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창업이든 직장생활이든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