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타파스 창업자 김창원 대표(현 Saywise 창업자 겸 대표)의 LinkedIn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요약하면 'LA에서는 누군가 큰 부자가 되면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다른 리그에 올라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옛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반면에 실리콘밸리는 큰 돈을 벌었어도 행동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젠슨 황, 마크 저커버크 수준으로 가면 달라질수밖에 없지만 자주 볼 수 있는 수백억대 부자가 됐다고 본인이 다른 리그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명인 사람과도 교류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더 착해서가 아니라 돈 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바보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창원 대표가 말한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엄청난 부자가 많은 동네지만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는 서울 강남에 10배쯤 더 많다. 작년 압구정동 점심약속 장소에 발레파킹한 내 차 양 옆에 롤스로이스 SUV 두 대가 서 있는걸 봤다. 실리콘밸리에는 30-40만불 차 값 정도는 별 거 아닌 부자들이 많을텐데, 차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은 값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LA는 한국처럼 자동차로 부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실리콘밸리에서는 티를 내는 대신 속으로 '역시 나는 품격이 있어. 돈 많은 걸 드러내지 않으니까 말이야'처럼 생각한다고 나는 본다. 이것도 나름의 속물 근성이라고 생각하지만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SF Bay Area를 무대로 한 넷플릭스 코메디물의 대사는 이런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시니컬하게 표현한다. '홈리스 옷처럼 보이는 1천불짜리 티셔츠'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돈 많은 사람이 부자 티를 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좋은 차로 과시하고 싶으면 비싼 차를 사는 것이고 누더기처럼 보이는 1천불짜리 티셔츠로 과시하고 싶으면 그런 옷을 입으면 된다. 1/1,000 정도 확률이긴 하지만 주변에서 수백억을 벌고도 소비성향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가 차원이 다른 부자가 되었다는 걸 내가 이미 아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어찌됐든 그 사람 선택이니 None of my business이다.
실리콘밸리와 다른 지역의 가장 큰 차이는 누구든지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믿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변 친구가 몇년 뒤 수백억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사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부잣집 자식이나 신문에 나올 정도의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아니면 갑자기 수백억을 벌 가능성은 없다. 혹시 코인 대박이 나면 모를까. 반면, 실리콘밸리는 누가 언제 부자가 될지 모른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내 유튜브 영상에서 말했듯 Pay it forward의 밑바닥에도 그런 생각이 깔려있다.
실리콘밸리의 엑싯은 한국과 규모가 다르다. 1-2백억 짜리 엑싯은 뉴스 가치도 별로 없다. 구글, 애플같은 테크 대기업들은 1년에 평균 수십개의 기업을 인수하는데 대부분 들어본 적 없는 회사이고 금액도 공표되지 않는다. 30대 초반 창업자가 자기 회사를 구글에 200억에 팔아 100억 번 후 구글에 들어가 스톡옵션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한국 기준으로는 왠지 건물 사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보니 지금 내가 상대방보다 돈이 많아도 역전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꺼진불도 다시보자'랄까?
며칠전 메타(페이스북)가 Scale AI 지분 49%를 $29B(40조) 가치에 투자(라고 쓰고 인수라고 읽는다)한다고 보도됐다. Scale AI 창업자 Alexander Wang은 97년생이니 28세이다. 서울에서 우리 회사에 인턴 지원하는 사람들 정도로 젊은 친구가 창업 9년만에 수십조원 부자가 된 것이다. 14조로 추정되는 이재용 회장 재산과 비교해 보시라.

한 지인이 지난 5월 Meta --> Scale AI로 이직할 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메타를 떠나 Scale AI 갔는데 다시 메타로 돌아온 셈이니 웃픈 상황일 것 같아 연락해보니 '뜨악입니다, 진짜'라고 한다. 옮긴지 얼마 안돼 vested share는 없겠지만 결국 이 친구도 상당한 돈을 벌 것이다. 기업가치가 40조에 찍혔고, AI 분야에서 Scale AI는 필수불가결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사람들이 특별히 고결하거나 돈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벼락부자가 될 수 있어서 누구도 무시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 곳이다. 물론 여기도 jerks, racist가 있지만 그건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일테니 실리콘밸리만의 일은 아닐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