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출, '묻고 더블로 가'는 하지 맙시다.

스타트업 대출, '묻고 더블로 가'는 하지 맙시다.

한국에서는 기보(기술보증기금)와 신보(신용보증기금) 등의 기관을 통해 스타트업 대출이 가능하여 많은 스타트업이 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출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대출은 생존보다는 성장을 위해 활용한다

대출이 스타트업 자금 조달 수단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돈이므로 지분 투자와는 다릅니다. 대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사업 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 마일스톤까지 필요한 자금이 100억 원인데, 전액을 지분 투자로 받으면 희석이 심해질 경우, 지분 투자 70억 원, 대출 30억 원처럼 equity와 debt를 혼합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회사라면 매출이 증가하고 현금 흐름이 충분할 때 대출을 갚을 수 있어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VC 펀딩이 어려운 불경기에 대출로 생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2024년)같은 불경기에는 대출 없는 회사를 보기가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보일 때 최후의 수단으로 한 번 대출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대출에 대출을 얹어서 계속 생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묻고 더블로 가'지 마시라는 얘깁니다. 상황이 나아져 펀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투자금이 대출 상환에 쓰이길 바라는 VC는 없습니다. 그러면 VC 투자를 받아도 기존 대출을 또 다른 대출로 대체해야 할 텐데, 그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큰 금액의 빚을 끌고 가는 것은 회사에도 좋지 않습니다.

특히 대표이사 보증이 있어야 나오는 대출은 회사가 망해도 창업자가 상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실제로 대출로 버티다가 폐업하여 대표이사가 일부 대출금액을 상환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보입니다. 대표가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사업인 것은 맞지만 회사와 함께 개인의 삶까지 망가지는 사태는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2. 완전자본잠식 상태는 VC의 발을 묶는다

상당 기간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지분 투자를 받지 못하고 대출받은 현금으로 생존하다 보면 회계상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창업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VC 펀드도 매년 회계 감사를 통해 투자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보수를 받습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투자 기업의 경우 감액 처리가 원칙이며, 감액한 기업에는 재투자하기 어렵습니다. 신규 투자자도 완전자본잠식인 회사에 대해서는 더 보수적으로 보게 되므로 펀딩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기보나 신보 보증으로 대출받았는데 자본잠식이라고 감액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모든 정부 정책이 완벽하게 조율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계 감사는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출자한 LP들이 정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보 대출 얼마 받을 수 있으니 그걸로 연명하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대출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넓게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리하자면, 대출은 어느 정도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의 일시적인 현금 흐름 해결이나 지분 투자와 혼합해서 희석을 낮추는 용도로 생각하시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 생존 수단으로 장기간 활용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3. 스타트업의 본질은 시장이나 자본에서 인정받아 성장하는 것이다

미국 스타트업의 생존 공식은 심플합니다. 매출이나 VC 펀딩이 있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는 것입니다. 꾸준한 매출 히스토리가 있다면 revenue-based financing이나 매출채권담보 대출 같은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기술력을 평가해서 대출해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매출이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펀딩되면 살고, 안되면 죽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할 수도 있지만, 대출이나 카드빚으로 돌려막으면서 생존하는 것보다는 지금 사업을 깔끔하게 폐업하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창업자 개인에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체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모든 개체가 억지로 생존하는 것이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타트업의 본질은 고객이 돈을 주거나 VC가 투자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창업자가 무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은 존경할 만하지만, 상당 기간 운영 후에도 대출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회사라면 창업자가 같이 가라앉기보다는 한 번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

대출은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사용에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이 장기적인 생존 전략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또한,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피하고, 스타트업의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