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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AI 집착이 한국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국산 AI'를 강조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진짜 경쟁력은 폐쇄적 보호가 아니라, 더 센 상대와의 개방된 경쟁 속에서 나온다. 정부 주도 AI, 국산주의적 접근이 과연 한국의 AI 생태계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밥그릇을 지키는 논리가 국가 미래를 가로막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국산 AI 집착이 한국을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근 네이버의 하정우 센터장이 청와대 AI 수석으로 발탁되고, 정부가 Sovereign AI 개발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AI에 진심인 정부의 행보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 방향이 옳은가에 대해선 질문이 필요하다.

국산 AI, 정말 필요한가?

네이버나 카카오가 지금까지 ChatGPT 같은 모델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과연 자본 부족 때문일까? 그렇다면 DeepSeek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수십 조 원이 투입된다면, 정말 세계 수준의 한국어 LLM이 탄생할 수 있을까?

무조건 ‘국산’을 내세우는 프레임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우리만의 AI가 필요하다”거나 “외국 기술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은 때로 설득력을 갖지만, 그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면, 오히려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한국적 민주주의’가 소수 권력자에게만 유리했던 것처럼, ‘국산 AI’라는 깃발도 특정 집단의 밥그릇을 위한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 지금 아래한글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AI 주도권 경쟁보다 중요한 것: 개방과 실력

나는 ‘밥그릇 론’을 믿는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누군가의 이해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어려운 이유는 NRA가 강해서가 아니라, 총기 산업에 돈으로 엮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료보험이 바뀌지 않는 이유 역시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보험사들이 개혁을 조직적인 자금 살포로 막기 때문이다.

AI도 마찬가지다. Sovereign AI를 주장하는 진짜 이유는 ‘기술 자립’보다는 국내 일부 기업들이 외부 경쟁 없이 정부 지원을 통해 안정된 이익을 얻고자 하는 데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구글맵이 국내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하는 쪽은 경쟁력 있는 지도 서비스를 만들 자신이 없는 업체들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기보다는, 외부를 막는 것이 밥그릇을 지키는 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전략의 허상: 스포츠에서 배우는 개방의 가치

우리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정후나 김혜성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들이 해외에서 한국인의 기량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버터 발음’이라 놀림을 받았지만, 그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박세리·김미현 시대에는 인터뷰를 한국어로 진행해 외국인 선수로서의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LPGA 한국 선수들은 영어로 우승 소감을 말하고, 미국 팬들은 국적이 아닌 실력과 친숙한 언어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세계 랭킹 1위인 넬리 코다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리디아 고는 뉴질랜드인이지만, 우리는 그를 ‘우리 선수’처럼 여긴다.

국적으로만 경계를 짓는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한국 사회 내부의 ‘획일성’이다.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과 교육 시스템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폭을 좁혔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이 부딪히는 보이지 않는 벽이기도 하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루이나이웨이의 사례

1990년대, 세계 여자 바둑계를 호령하던 중국의 루이나이웨이는 정치적 이유로 중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자국 출신이 아닌 그녀는 일본·한국 프로기전 참가 자격이 없었다.

그녀가 일본기원에 입단을 요청했을 때, 일본 여류 기사들은 “루이가 오면 우승을 독식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한국 여류 기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우리가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싸우다 보면 실력이 늘고 언젠가는 이긴다. 루이와의 경쟁은 우리의 성장 기회다.”

그 결과, 루이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기원 소속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동시에 박지은, 조혜연 등 한국 기사들도 루이에 맞설 정도로 성장했고,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올라간 한국 여자 바둑의 수준은 오늘날 최정 9단의 장기간 세계 최강 유지로 이어졌다. 반면, 루이를 거부한 일본 여류 바둑은 지금도 한중일 중 가장 약하다.

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나는 한국인의 영민함과 근면함, 그리고 탁월한 실행력을 믿는다. 우리는 문을 걸어 잠가야만 성장하는 민족이 아니라, 더 센 상대와 부딪히며 성장하는 민족이다.

국산 AI의 개발이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것만 있어야 한다’, ‘외국 기업은 막아야 한다’는 폐쇄적 접근은 한국의 진짜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일본 여류 바둑처럼 문을 닫고 편하게 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뒤처지게 된다.

AI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